프롤로그

그들의 기록은 우리의 기억이 될 수 있을까

기억은 몸에 새겨진다. 고통스러운 기억일수록 더 깊게 새겨진다. 전쟁의 기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쟁은 그 시공간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에게 고통을 드리운다. 그렇기에 전쟁의 기억은 개인이 겪어낸 고통의 기억일 뿐만 아니라 고통의 사회적 기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는 어떻게 전쟁을 기억할 수 있을까. 한국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고통이 있었다.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는 그 고통의 무게를 알 수 없다. 고통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전쟁을 겪은 세대의 기억을 전해 들음으로써만 가능하다.

하지만 어떤 고통은 말할 기회를 얻었지만, 어떤 고통은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어떤 고통은 기억되고 어떤 고통은 잊혔다. 왜 어떤 기억에만 말할 기회가 주어졌을까. 왜 다른 기억은 침묵을 강요당했을까.

이 물음으로부터 한국전쟁 70년 기억 사진전 《허락되지 않은 기억 RESTRICTED》는 시작되었다. 전쟁의 상흔은 사회 전체가 함께 감당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고통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강요된 침묵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고통은 더해갔다.

흔히 전쟁 지도부는 ‘객관적’인 위치에서 전쟁을 관찰한다고 간주한다. 회의실에 놓인 거대한 상황판 주변에 둘러앉아 작전과 대책을 논의하던 사람들. 그들이 상황판을 통해 바라보았던 전쟁의 모습이 그대로 국가의 공식기억이 되었다. 본 전시는 한국전쟁을 그러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망하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전쟁 지도부가 허락하지 않았던, 외면하려 했던 전쟁의 모습에 집중하려 했다.

1부 ‘불가능한 피란’에선 피란, 폭격, 학살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꾸렸다. 공산주의의 압제를 피해 떠난 ‘자유 피란민’이라고 치켜세워졌던 피란민들은 과연 길 위에서 어떤 ‘자유’의 모습을 만났을까.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대량폭격의 모습은 스펙터클로 묘사되지만, 그 피폭지에 있었던 사람들은 어떤 일들을 겪었을까. 국가는 어떻게 민간인학살과 같은 전쟁범죄의 가해자가 되었을까. 이와 같은 질문을 먼저 품고 고민한 사람들이 있었다. 전쟁의 고통을 증언하고 기록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이 있었기에 전시의 내용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2부는 ‘전쟁을 통과하는 10개의 방’이라는 이름으로 1부의 전시 내용에 보다 깊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와 1부에서 다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담았다. 10개의 방의 이름은 각각 어떤 무덤, 남겨진 사람들, ‘부역자’, ‘위안부’, 어떤 폭격, 고지전, 노무자, 반란자1, 반란자2, 불러보는 이름이다. 전쟁을 통과한 이들의 흔적, 이름, 목소리, 얼굴, 필체 등은 그들이 홀로 감내해왔던 전쟁의 기억을 바깥으로 표출해낸 기록이자 ‘말 걸기’다. 우리가 그들 개개인의 기록을 마주하고, 읽고, 듣고, 감각하고, 거기에 응답한다면 그들의 기록은 우리의 기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디 본 전시가 그동안 침묵을 강요당했던 목소리에 조금의 숨통이라도 터주기를 바란다. 그 목소리를 듣게 될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