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국가는 특정한 죽음과 기억만 밝은 곳에 두었다.
어떤 죽음과 기억은 부수고 조각내 땅속에 파묻었다.
그렇게 어떤 뼈는 수십 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어떤 기억은 수십 년 동안 가슴 깊이 묻혀 있었다.
이제는 그 모든 진실과 목소리들이 밝은 곳으로 나와야 한다.
*유해가 발굴된 지역은 하늘색으로 표시
2002년 당시 지도에는 94곳만이 표시되어 있지만, 2010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이후 민간인 학살지는 700여 곳으로 늘었다.
유해발굴이 이뤄진 곳은 20여 곳에 불과하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일어난 이승만 정권에 대한 청산 과정에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도 있었다. 각지의 유족들은 피학살자 모임을 조직해 적극적으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활동은 얼마 이어지지 못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은 유족회의 활동을 이적행위로 간주하고 유족회 간부들을 구속하는 등 진상규명 활동을 탄압했다. 탄압 활동에는 피학살자의 유해 매장지를 파헤치거나 위령비를 파괴하는 행위도 포함되었다.
“군부는 위령비 양면의 모든 글자를 정으로 쪼개 알아볼 수 없도록 한 후 땅에 묻어버렸다. 땅 속에 파묻혀 있던 위령비는 1988년 2월 15일이 되어서야 땅 속에서 나올 수 있었으며, 현재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구묘역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노용석,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 산지니, 2018, 109p
백조일손지묘는 제주 섯알오름 부역혐의 학살 희생자 합동분묘였다. 1961년 15일 서귀포경찰서는 합동분묘 및 위령비를 훼손하려다가, 유족들의 거센 반대로 해머로 위령비를 조각낸 후 주변에 버렸다. 유리함에 들어있는 것은 당시 조각난 위령비의 파편이다. *
*노용석, 『국가폭력과 유해발굴의 사회문화사』, 산지니, 2018, 111-11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