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

왜 전투는 멈추지 않았을까
휴전회담은 1951년 7월 10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약 2년 동안 지속되었다. 회담 동안 전투를 멈추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군사적 압박을 통해 회담에서 이득을 위하고, 휴전 후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2년 동안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고지쟁탈전이 계속되었다. 전투의 피해를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것은 전선의 군인들이었다.

수도고지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응급처치를 받는 병사
1952.9.13. NARA 소장

동료 병사에게 업힌 채 후방으로 이송되는 부상병
1952.9.13. NARA 소장

1951년 11월 27일자 잠정군사분계선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휴전사』, 1989, 138p

1953년 7월 27일자 군사분계선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휴전사』, 1989, 302p

1953년 7월 27일. 마침내 휴전에 합의했지만, 휴전회담 초기 합의했던 군사분계선과 최종 합의된 군사분계선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연도별 군인 부상자 통계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 피해통계집』, 1996, 39p

휴전회담 이전의 전면전 기간(1950.6~1951.7)보다 휴전회담 이후 고지전 기간(1951.7~1953.7)에 더 많은 군인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도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이송되기를 기다리는 9사단 병사들
1952.10.8. NARA 소장

휴전회담이 시작되었다는데, 왜 전투는 멈추지 않았을까. 도대체 전쟁은 언제 끝나는 걸까.
수많은 병사들이 절박한 물음을 안고 수십, 수백 번의 전투를 치러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회담장에 앉아 있던 그 누구도 물음에 응답하지 않았다.